배유연 / 미국의 홀로코스트 기억 전략: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까지 / 2026 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지원사업

연구목표
(한글 2000자 이내)
본 연구는 역사학과 기록학의 융합 연구를 지향하며, 미국이 홀로코스트와 인권 의제를 주도하고 확산하는 방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대 제국의 헤게모니 중심성이 디지털 전환기에 간접적으로, 비가시적으로 강화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홀로코스트의 미국화-디지털 기록콘텐츠화의 사례를 통해 조명한다. 미국 주도 하의 국제 공론장에서 디지털 아카이브 기반으로 자료 활용 방식이 고도화되는 추세를 살펴봄으로써, 현대 제국의 이념 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홀로코스트 의제는 21세기 국제사회의 정치, 학술, 사회문화 영역에서 보편적인 확산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0년 1월, 세계 46개국 대표가 공동으로 발표한 “스톡홀름 선언”(Stockholm Declaration)은 홀로코스트 관련 교육, 기념, 연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국제적인 약속으로 끌어올렸다. 주목할 만한 점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공적, 사회적 기억이 상당 부분 미국화된 홀로코스트 내러티브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미국화된 홀로코스트 의제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인권과 같은 보편 가치 확산, 차별 및 혐오 반대의 메시지를 발신한다. 본 연구가 집중하는 문제는 왜, 그리고 어떻게 지리적으로도, 인종 구성비로도 사건 당사자와 거리가 있는 미국이 홀로코스트의 기억과 교육을 주도하느냐는 점이다.
미국은 홀로코스트 문제에서의 옅은 당사자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국내외의 공적 담론에서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유대인 권력의 개입, 홀로코스트 의제의 산업화,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의 억압회귀 등에 주목하는 여러 설명이 제시된 바 있다. 본 연구에서는 특히 국제사회의 질서 유지자로서 헤게모니 지속 수단으로 도덕적 우위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주목한다.
보편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동시에 타자에게 개입할 명분 또한 잃지 않는 것이 혁신주의 시대 이래 미국 외교의 기조였다. 그러나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 데탕트와 탈냉전으로 개입의 명분이 약화된 미국은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논리를 재정의해야 했다. 1990년대부터 미국은 인도주의적 개입, 테러와의 전쟁, 민주주의 확산 및 국가 재건 등을 기치로 국제분쟁에 관여하여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대량 학살에 대한 예방적 개입이 인류 보편 정의를 실현하는 강대국의 도덕적 책무라는 이데올로기, 이를 뒷받침하는 규범으로서의 인권 담론은 홀로코스트 중심의 기억문화와 강하게 결부되었다. 특히 이스라엘과의 긴밀한 동맹 관계는 종종 전략적 합리성을 넘어선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외정책과 맞물려 홀로코스트 의제의 중요성을 강화했다. 그러나 미국과 서방 진영이 보편 규범과 인도주의적 개입 논리를 정치적, 선택적으로 적용한다는 비판 또한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본 연구는 첫째로 이와 같은 공적 기억문화와 국제 정치 간의 관계에 천착한다.
본 연구를 통해 규명하려 하는 또 하나의 질문은 디지털 기록관리 환경이 국제 이념 정치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활용되는가이다. 대규모의 디지털화 프로젝트는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력, 표준화와 환경 조성 등에 의존하는 구조이며 결과물의 활용 주체 역시 선진국으로 편중된다. 이를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로 보는 시각과, 반대로 디지털 환경이 국제적인 초연결성과 연대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보는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디지털 기록관리 환경에서의 데이터 편향성과 기록관리 구조의 비가시적 권력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디지털 전환기에 현대 제국의 헤게모니 중심성이 어떻게 강화 또는 변주되는지 탐구한다.
기대효과
(한글 2000자 이내)
연구의 주안점은 궁극적으로 대상으로서의 기록물(archives-as-thing)뿐만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기록화(archiving-as-process)에 있다. 기록화는 사건에서 파생되는 부수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결정력을 발휘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기록물의 존재와 그 방식으로 인해 역사가 서술되고, 사회적 가치가 교육되며, 국내외에서 담론을 형성하거나 정책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본 연구는 1) 부수적인 영역에 머물렀던 기록관리 구조 자체의 역사적 역할과 영향력에 천착하며, 2)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투입하여 이를 장악하고 활용함을 현대 제국의 특성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3) 역사학과 기록학이라는 두 학문 분야의 심도 있는 융합 연구 표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의미가 크다.
또한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 키워드인 디지털화-기억-인권 담론에 대해, 본 연구자는 아키비스트이자 역사학 연구자로서의 통찰과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공감’, ‘인권 감수성’ 등의 표현들이 남발되는 현대 사회에서 과도한 공감과 동일시가 더욱 큰 공격성으로 외집단에 표출된다는 의견이 있다. 미국 주도 하의 홀로코스트 의제 확산이 국제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그 동맹국에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여 개입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인권 담론이 매개하는 이데올로기, 그 작동 메커니즘 자체를 거시적으로 살펴보며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디지털 기록관리 환경 자체가 내포하는 구조, 토대로서의 성격 및 그 국제 정치에서의 활용을 거시적으로 조명한다. 후속 연구에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환경이 기존 기록관리구조에서 배제된 서발턴(subaltern) 주체들과 맺는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소수자의 기억 발굴과 보존을 위한 구술사 프로젝트와 디지털 아카이브에 대한 오픈 액세스 운동, 커뮤니티 아카이브 등의 저항적 시도들을 주제로 삼은 후속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연구자는 이를 통해 ‘디지털 역사학’의 이름으로 연구에 디지털 툴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환경에서의 역사학 자체를 진지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생산성과 효율에 최우선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혁신에 직면하여 역사학이 나아갈 길을 탐색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당면 과제이다. 연구자는 이와 관련하여 기록학이 발휘할 수 있는 매개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역사적 증거로서 디지털 기록과 아카이브에 어떻게 접근할지는 역사학과 기록학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이다. 본 연구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바탕을 두고 두 학문의 생산적인 교류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연구 영역을 개척하고자 한다.
연구요약
(한글 2000자 이내)
1장에서는 냉전 이후 이념적 대립이 첨예해진 국제 정치에서 홀로코스트 의제가 대두하고 활용되어 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한다. 먼저 독일, 소련, 이스라엘과의 적대 혹은 동맹 관계에 따라 미국이 홀로코스트 의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설명한다. 이후 아이히만 재판과 중동전쟁을 거치며 미국 사회와 국제 정치의 중요 담론으로 부상한 홀로코스트와 인권 담론이 국가 정책에 반영되고 미디어로 확산된 과정을 조사한다. 나아가 홀로코스트 의제가 국제사회의 보편 의제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조명할 것이다.
2장에서는 본 연구를 관통하는 아카이브와 기록관리 구조의 정치적 기능에 대한 논쟁점을 소개한다. 정치적 도구로서의 공공 아카이브에 대한 논쟁은 주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주의 통치와 관련하여 제기되었으며, 제3세계 기록유산의 디지털화 프로젝트에 대한 논쟁으로 다시 점화되었다. 이러한 논쟁의 계보에서 NARA의 홀로코스트 아카이브 사례가 어디에 위치하게 될지 살펴보고, 현대 제국이 기억의 정치를 주도하는 수단의 고도화를 조명함으로써 아카이브의 정치성과 관련된 논쟁의 외연을 넓히고자 한다.
3장에서는 2장에서 제기한 문제를 구체화하여 NARA의 Holocaust-Era Assets Records Collection 수집과 선별평가, 보존관리, 기록콘텐츠화 과정과 그 결과물을 다각도로 검토할 것이다. 이와 함께 종이기록관리에 비해 압도적인 자본력과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전자기록관리 체계가 효율성과 접근 가능성을 대폭 확장하는 한편, 현대 제국의 헤게모니를 뒷받침하는 양상을 주요하게 다루고자 한다.
4장에서는 이와 같은 NARA의 홀로코스트 기록콘텐츠가 미국 국내외에서, 나아가 디지털 연결망에 토대를 둔 초국적 기억공동체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종합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첫째로는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의 함양 등을 목표로 홀로코스트 교육을 강조하는 미국 국내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해당 컬렉션에 바탕을 둔 주요 성과물과 정책 등을 검토한다. 다음으로는 해외 유관 기관과의 협력 사례들을 중심으로 NARA가 홀로코스트 의제의 확산과 국제 담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전환기의 초국적 기억공동체에서 홀로코스트가 어떤 기억들과 병치되고 대립하며 새로운 기억문화를 형성하는지, 이에 NARA의 홀로코스트 기록콘텐츠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고찰한 결론을 제시한다.
역사학 연구로서, 본 연구는 국제 정치에서 홀로코스트 의제의 정책적인 활용에 중점을 둔 설명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종전부터 냉전, 탈냉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홀로코스트 문제를 서사화하고 확산해 온 과정을 추적한다. 그 구체적인 분석 지점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의 기록물 수집과 활용, 아이히만 공개 재판과 중동전쟁 시기에 두드러진 미디어 선전, NARA와 Holocaust Memorial Museum의 디지털 컬렉션 구축 등이다.
이와 함께 본 연구는 NARA의 컬렉션을 심도 있게 분석하기 위한 디지털 인문학적 방법론을 활용한다. NARA의 시기별 홀로코스트 기록물 수집, 컬렉션 구축, 디지털화, 파트너 체결, 전시·활용 현황 등의 조사 결과는 통계화하여 전체적인 추세를 살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컬렉션의 분류체계, 주제어, 조직화 구조, 페이지 상에서의 아이템 배치, 인접 컬렉션 및 외부 페이지 연결 등에 대해서는 심층 내러티브 분석을 수행한다. 컬렉션에 적용된 시소러스의 내용적인 탐구를 위해 주제어별 검색 결과를 맵의 형태로 시각화하는 등, 양적 연구 방법과 질적 연구 방법을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본 연구는 아카이브를 지식과 권력의 장치로 이해하는 에드워드 사이드, 버나드 콘, 니콜라스 더크스, 라나지트 구하, 앤 로라 스톨러, 프랜시스 블로인, 윌리엄 로젠버그 등의 비판적 전통을 계승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카이브를 사회적 책임성의 실현 기반이자 민주주의적 공론장의 필수 조건으로 이해하는 위르겐 하버마스, 베른 헤리스 및 영미권의 실천적 기록학 연구자들의 관점도 참고한다.
키워드(Keyword)
(한글 250자 이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 기억의 정치, 기록의 정치, 홀로코스트의 미국화
키워드
(영어 500자 이내)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NARA),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USHMM), Politics of Memory, Politics of Archives, Americanization of the Holoca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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