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환 / 성균관대학교 / 근현대 일기의 역사적 양상과 사적 서사의 서사학 / 5.8천만 / 120개월 / 2025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연구목표:
이 연구의 목적은 글쓰기의 실천에 작용하는 다양한 힘들을 대상화하는 한편, 그런 힘들에 저항‧타협‧공조‧갈등하는 서사의 내재적 연속성 및 불연속성에 주목함으로써 서사의 역사적 양상을 장기적‧구조적 관점에서 검토하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 연구에서는 서사를 두 가지 차원, 곧 공적 서사(public narratives)와 사적 서사(private narratives)로 유형화했다. 이 연구는 그중 대표적인 사적 서사인 일기의 내용‧형식‧기능‧효과 등을 그것이 놓여 있는 현실 및 역사적 맥락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분석한다. 일기가 잘 대변하듯 사적 서사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생산되어 가급적 저자와 독자가 일치하는 서사이다. 내향적이면서 은폐적인 사적 서사는 전문적 글쓰기의 토양으로 기능하는 한편, 타인의 삶을 재구조화하는, 외향적‧과시적인 공적 서사와는 다른 그 자신만의 글쓰기 세계를 형성한다. 공사(公私) 개념에 입각한 서사의 중층성, 사적 서사의 자율성, 사적 서사와 공적 서사의 관계 등을 고려하며 장기적 시야에서 사적 서사의 역사적 성격을 검토하는 이 연구는 기존의 서사 연구를 일신하는 한편, 문학의 장기변동사 연구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데 기여할 것이다.
기대효과:
(1) 학문적 기여도
▪ 서사학 연구의 혁신을 향한 계기: 디지털 문화의 일상성이 4차 산업혁명, 특히 AI의 상용화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 읽기와 쓰기의 실천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논의도 이제 상식이 되어버렸다. 논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인간의 삶과 서사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차원에서의 학문적 탐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의 서사 연구는 디지털 문화가 일상화되던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지만, 그 작업은 어디까지나 공적 영역에서 산출되는 서사에 한정되었을 뿐이다. 공적 영역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사적 영역의 서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이 연구는 서사학 연구자들에게 사적 서사 연구의 필요성을 자극하고, 그들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 사적 기록물 연구의 확산 자극: 근대화의 과정에서 공적 기록물이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를 맞이한 것에 비해 사적 기록물은 전근대나 근현대나 상관없이 대체로 한 개인의 능력 범위 내에서 생산‧보존되어 왔다. 이는 타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개인의 이면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사적 기록물만 한 자료가 없음을 뜻한다. 물론 사적 기록물은 공적 기록물에 비해 접근이 어렵고, 설령 확보하더라도 자료의 성격이 파편적이고 비일관적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연구가 쉽지 않다.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모색하려고 한 이 연구는 분명 그런 문제의식의 형성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 문학의 장기변동사에 대한 이해 심화: 번역된 ‘문학’, 말하자면 근대문학은 본래부터 외래적인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한껏 강화된 이래 고전문학과 근대문학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그러나 문학이 아무리 근대의 산물이라고 해도 문학적인 것은 근대 이전에도 실재했다. 역사적 개념의 엄밀성을 추구하는 것만큼이나 개념의 일반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전근대 및 근대의 불연속성과 함께 그 연속성까지 고려하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연구는 그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근현대의 일기를 가급적 장기적 시야 속에서 검토하고자 했다. 이는 문학의 장기변동사 연구의 사례로서 자리매김할 것이다.
(2) 사회적 기여도
▪ 오늘날의 공적‧사적 영역에 대한 이해 심화: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등장한 지도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다. 주목할 현상은 SNS를 통한 사적인 것들의 과시다. 과거라면 사적 영역에 은폐된 채 존재했을 기록물들이 공적 영역에서 범람하고 있다. 사적 영역의 위축과 공적 영역의 팽창이 가속화되는 것이 오늘날 공적‧사적 영역의 특징일 것이다. 이 연구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공적‧사적 영역과 그 영역에서 산출되는 기록물의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역사적 안목을 제공함으로써 오늘날 현대인의 삶을 더 폭넓게 이해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 인문학 교육의 혁신: 문학과 역사는 인문학 분야의 정규 교과과정이나 대중강좌의 주요 주제다. 그러나 특정 자료만이 되풀이되는 데서 비롯된 지루함이나 이론의 경직성 때문에 교수자나 학생 모두 문학과 역사 교육에 흥미와 열정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적 기록물인 일기는 새로운 커리큘럼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자료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저명 작가의 개인적 삶을 다채롭게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교수자 및 학생 쌍방의 흥미와 열정도 새롭게 자극할 것이다.
▪ 사적 기록물의 재창조 작업 활성화: 일기라는 사적 기록물의 사회적 공유 및 확산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 연구는 지역문화나 문화산업을 활성화하는 계기이자 원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 편의 이야기나 소설이 영화, 연극,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변용되듯 근현대 일기 또한 OSMU(one source multi-use)의 가능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기는 저명인사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자 당대의 민속자료로 널리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학관이나 박물관 등의 전시 콘텐츠 등으로 일기가 활용되는 데 이 연구의 결과물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연구요약:
사적 서사(private narratives)란 비공개를 원칙으로 사적 영역에서 생산‧재생산되는 서사를 뜻한다. 주로 일기, 편지, 각종 노트 기록물 및 메모 등의 형태로 존재한다. 잘 알려져 있듯 사적 서사는 자기 정체성의 형성 및 자아의 삶을 재구조화하는 내향적인 속성 및 효과가 두드러진 서사다. 일찍이 미조구치 유조는 공사(公私) 개념의 동아시아적 기원을 추적하면서 수장성(首長性) 및 공동성(共同性)에 근간한 공적인 것에 대비‧종속되는 것으로서 사적인 것의 속성을 정리한 적이 있었다. 그의 논의에 기초하면, 사적 서사는 어떻게 해서든 대표성을 거부하고, 현저한 개별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타인과의 공유를 금기시하며, 가급적 저자와 독자가 일치되는 서사이다. 말하자면, 저자와 독자와 완벽히 일치하는 일기나 수신자와 발신자가 정해진 편지가 그 외의 타인에게 공개되는 순간 해당 일기나 편지의 사적 속성은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사적 서사는 교환되지 않는 서사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사적 서사 중 일기에 주목한다. 일시적‧파편적인 방식으로 생성되는 편지나 메모, 혹은 어느 정도의 분량을 보이긴 하지만 이 역시 단편적인 것에 불과한 각종 노트 기록물과 달리 일기는 사적 서사들 중 상대적으로 가장 많은 분량에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일관되게 생성된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기본 과제는 20세기 일기의 서사 구조를 검토하는 것이지만, 일기의 시계열적 변화상, 그 역사성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일기의 안팎 모두를 파악할 수 있는 연구방법론을 취해야 한다. 즉 서사학의 방법론을 활용해서는 일기의 내재적 분석을, 문학사회학의 방법론을 활용해서는 외재적 분석을 수행하려고 한다.
내재적 분석의 경우 서사학 연구에서 활용하는 분석 기준이나 항목 중 세 가지를 분석의 주요 지표로 활용한다. 바로 시간‧공간‧인물의 삼각 축이다. 여기서 시간의 리듬은 두 차원으로 구분한다. 일기의 특성상 일상적‧반복적인 시간의 리듬과 함께 특별한 사건의 발생과 함께 개입하는 비일상의 일회적 시간의 리듬을 말한다. 일기에서 그 두 가지 시간의 비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추적한다. 이와 동시에 일기에 기록된 지명 정보를 활용해 일기의 공간적 범위를 가늠하고, 일기에 기록된 인명 정보를 활용해 일기의 인적 네트워크를 복원한다. 이를 위해 이 연구에서는 일기의 지명‧인명‧사건명을 DB(database)로 구축하려고 한다. 이 DB는 시간‧공간‧인물의 삼각 축에 근간한 일기의 내재적 분석의 지표로 활용한다.
외재적 분석의 경우 기본적으로 저자의 출신, 직업, 연령(세대), 학력, 젠더 등의 사회학적 변수들을 고려한다. 아울러 식민지, 전쟁, 혁명, 고도 경제 성장을 비롯한 당대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들이 서사의 구조적 안정성 및 지속성, 말하자면 서사의 내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다. 이를테면, 갑작스러운 역사적 사건의 발생으로 역사적 시간이 일기의 서사에 개입해 일기의 일상적‧반복적 시간의 리듬이 와해‧변형되는지, 아니면 역사적 시간의 개입을 차단해 일상적‧반복적 시간의 리듬이 고수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요컨대, 내재적 분석을 통해 확보한 시간‧공간‧인물의 삼각 축의 변화상이 어떠한 외재적 요인과 어떻게 맞물리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키워드:
일기, 자서전, 서사학, 공적 영역, 사적 영역, 공적 서사, 사적 서사, 논픽션, 일상성, 사적 기록물, 개인기록, 사생활의 역사, 근대성, 문학의 장기변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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