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 / 디지털 문명 시대에 새롭게 보는 악의 문제 / 2024년도 공동연구지원사업

이정원 / 서강대학교 / 인문학 / 디지털 문명 시대에 새롭게 보는 악의 문제 / 2024년도 공동연구지원사업 예비선정

연구목표:

○연구의 목적
이 연구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악이 문화로서 존재함을 전제로, 악의 문화는 무엇이며 그 근원은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탐색하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문명 시대의 악에 대한 진단, 악의 역사적 양상과 그 현재적 유산, 그리고 악에 대한 여러 이해와 극복의 사례를 통해 다양한 대응 가능성 등을 탐구한다. 기존 연구에서 악을 반신(反神)의 지향성이나 인간성의 결핍 등으로 다룬 것과 달리, 이 연구에서는 악을 공동체의 존속과 개인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일종의 문화로서 전제한다. 이는 악의 본질을 인간 심성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 간주함으로써,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펼쳐지는 악의 문화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명적 과제임을 이해하고 그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연구의 필요성
①악의 도구화
우리 사회에서 악 개념은 부정적 대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규정함으로써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안내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악의 도구화는 개인과 공동체에게 도덕적 왜소함이라는 잔혹한 현실을 남긴다. 악의 도구화가 심각해지는 배경은 다양하다. 정치적 갈등을 이념적 선악 구도로 치환하게 되면 심각한 악의 도구화가 생겨난다. 진보된 자본주의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나 생명기술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윤을 추구함으로써 인지, 정서, 그리고 생명 자체까지도 상품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악의 도구화로 생겨나는 증오나 혐오는 매력적인 상품으로써 유통되고 소비된다. 그러나 악에 대한 기존 담론은 악의 존재론에 치중했기에 악의 도구화 문제에 대응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디지털 문명은 이러한 도구화를 더 대규모로, 더 일상적으로, 그리고 더 복합적으로 일어나게 할 기술적/사회적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악을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여 악의 도구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포착하고 그 문제성의 기원과 적절한 대응을 탐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②윤리적 주체의 확대
윤리적 주체란 자율성과 책무성을 지니고 윤리적 행위를 수행하는 존재이다. 20세기까지 윤리적 주체는 자의식과 도덕 의지를 지닌 인간이 유일했지만, 현재는 인공지능과 같은 비인간 인공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윤리적 주체의 확대가 불가역적인 현실로 인정되면서 직시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문명사적 흐름을 거시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학술적 담론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존의 선악 담론은 비인간 윤리적 주체의 윤리적 판단과 행위를 논의의 대상으로 포괄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공적 도덕 행위자는 인간이 아니기에 심성론으로 선악 판단의 동기나 의지를 설명할 수 없고, 나아가 판단에 이르는 내적 과정을 인간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리적 주체의 확대 현상은 악에 대한 담론을 포스트휴머니즘에 부응하여 고도화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③윤리적 전환에 대한 사회적 대응
악의 도구화와 윤리적 주체의 확대는 오늘날 진행되는 윤리적 전환의 양상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 사회에 이전과는 다른 대응을 요구한다. 가령, 인간이 신뢰할 수 있는 윤리적 AI의 개발하는 경우, 인지 역량을 위한 딥 러닝 기술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 대한 문화적 학습 능력인 딥 언더스탠딩(Deep Understanding) 기술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규범의 위반이라는 범죄 판단과 구분되는, 공동체의 지향과 혐오가 투영된 선악관이 해명되어야 한다. 범죄 판단이 금지를 제도화한다면, 선악의 구분은 행위의 지향을 규범화한다. 따라서 윤리적 전환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별 공동체의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성격과 경험, 쾌락과 보람에 대한 사회적 합의 등이 윤리적 AI 개발 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지향과 혐오가 투영된 선악관에 대한 광범위한 학제간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대효과: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악이 문화로서 존재함을 전제로, 악의 문화는 무엇이며 그 근원은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탐색하고 제안하는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효과가 기대된다.

①디지털 문명 시대의 윤리적 심층에 놓인 문제의 발견
디지털 기술은 인공지능, 자율 로봇, 가상 현실 등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실재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인류에게 육체와 정신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불평등이나 불공정으로부터의 회피 등을 통하여 디지털 파라다이스를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저절로 충족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정보통신 기술의 넓은 개방성, 인공지능의 윤리적 판단, 자율 로봇의 광범위한 활용, 가상 현실의 구축 등은 존재론적 취약성, 인간성의 계량화와 윤리적 획일화, 폭력에 대한 무책임과 면죄의 정당화, 사회적 연대의 실종 등을 부추길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악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 연구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윤리적 갈등과 위기를 증폭시키거나 새롭게 형성할 수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디지털 문명에 대한 우리 공동체의 준비를 촉구할 것이다.

②사회악(Folk-Devil)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고도화
사회악은 그것이 표지하는 행위나 규범 그 자체를 넘어, 가족 제도의 붕괴, 경제적 불확실성의 증대와 국가의 사법 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등 다양한 사회적 불안의 징후로서 접근할 때 비로소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사회악에 대한 서구의 연구들은 하향식의 형벌 포퓰리즘이나 상향식의 자경주의에 대한 비판, 새로운 과학 기술을 활용한 통제의 문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 사회악이 각 사회에서 구성되고 변화하는 방식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조선 시대 회화와 유교, 식민지 의학 지식, 전후 반공 포스터, 오늘날의 디지털 미디어와 범죄 예방의 테크놀로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역사적 변화를 통해 악의 표상 이면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본 연구는 사회악 연구의 지역적 독자성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사회악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담론을 고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③윤리적 AI 설계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전문가 양성의 담론 형성
윤리적 AI는 개인과 공동체의 윤리적 판단을 위임받는 인공지능이다. 윤리적 AI의 출현은 단계적이어서, 처음엔 보조적 수단에 그치지만 나중엔 권위를 인정받아 인간을 대체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 윤리적 AI가 대체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그것이 인류 보편의 관심과 이해를 대변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윤리적 AI의 구축이 자본과 권력의 공동 이해 속에서 이루어질 때 ‘대체로부터의 소외’는 필연적이다. 소외는 여러 영역에서 발생할 것이다. 경제력과 정치력 등이 결핍된 사회적 약자, 국제적 위상이 미미한 소수 민족,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공적 운동 등. 이러한 소외는 윤리적 AI가 내리는 결정의 위력을 감안하면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윤리적 AI의 설계는 매우 광범위하고도 심층적인 사회적 합의를 요구받는다. 또한 이러한 공적 요구를 이해하고 실현할 전문가의 양성도 필요하다. 이 연구는 이러한 요구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형성에 기여할 것이다.

④교양 과목 및 대학원 수업으로의 연계
문화의 영역에서 악의 문제를 다루는 본 연구는 그 성과를 국내외 대학 수업으로 연계하기에 매우 적절하다. 악의 문제는 개인의 정체성과 자존감, 그리고 사회 정의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 연구의 성과를 ‘악의 문화사’ ‘악인과 악행 그리고 개인’ ‘Korean Popular Culture’ ‘미디어 콘텐츠에 나타난 악의 형식’ ‘문학과 악’ ‘AI시대 악의 성찰’ 등과 같은 인문 교양 수업으로 확산할 수 있다. 또한 이 강의들을 K-MOOC를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할 수 있다. 아울러 문학, 사학, 사회학, 종교학 등 악을 매개로 한 공동연구의 성과는 연구 대상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의 사례로 대학원 수업에서 활용될 수 있다.

연구요약:

○연구 목적
이 연구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악이 문화로서 존재함을 전제로, 악의 문화는 무엇이며 그 근원은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탐색하고 제안하고자 한다.

○연구 방법
연구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학제간 연구의 다양성과 함께 연구 목적에 대한 정합성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이 연구는 다음의 연구 방법을 따르겠다.
①연구의 누적적 발전을 위한 단계별 목표 설정
이 연구는 악의 문제에 대하여 개별적/인문적 지식의 창출이 아니라 사회적/문명적 문제에 대한 대응을 지향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연차별 연구 주제를 정하여 연구 내용이 누적·발전하도록 한다.
-1년차(문제의 발견과 공유): 문화로서 존재하는 악의 문제성을 발견.
-2년차(문제의 근원에 대한 탐색): 악의 문화가 비롯된 근원을 역사/철학/사회/문화/기술 측면에서 탐색.
-3년차(문제에 대한 대응책 제안): 악의 문화로부터 인간성의 존엄과 문명의 진보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제안.

②문화사적 방법론 개념으로서의 악
이 연구는 악을 문화사적 방법론으로서 접근한다. 문화사적 방법론으로서의 ‘문화’는 역사를 구성하는 주요한 힘이고, 인간 자신의 본성을 지배하고 개발하는 실체이며, 개인과 공동체가 만들어 내는 고유한 생활 양식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문화 개념은 악의 역동성과 일상성 그리고 변화성을 포착하는 데에 적절하다. 이런 접근은 두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 문화로서의 악을 사회 변동을 일으키는 역동적인 힘으로 간주할 수 있다. 둘째, 문화로서의 악을 인간의 소산에 국한하지 않고 비인간 주체까지를 아우를 수 있다.

③정합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공동 연구
이 연구는 학제간 공동연구로 진행된다. 인공지능 융합교육, 응용윤리, 사회학, 한국 중근세사, 종교학, 한국 근현대사, 범죄사회학, 회화사, 한국 고전문학, 한국 현대문학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연차별 연구 목표에 맞춰 활동함으로써 다면적이고 융합적인 성과를 낼 것이다.

○연구 내용
■1차년: 오늘 날 문화로서 존재하는 악의 여러 양상들을 발견하고 그 문제성을 드러낼 것이다. 이로써 악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를 공유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공지능 시대를 위한 윤리적 지평의 재설정: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질병의 악마화와 사회적 배제: 정신요양시설의 종교적 계보를 중심으로
-정의로운 악: 자경주의라는 폭력
-디지털 시대, 미신과 공포로서의 악과 새로운 수호 의례들
-악으로 포획되는 미디어의 타자들: 웹툰/드라마에서 약자에 대한 혐오

■2차년: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악의 문화가 어디에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그 기원을 역사적 · 철학적 · 사회적 · 기술적 · 문화적 측면에서 탐색할 것이다. 악의 문화가 지닌 고유한 실체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공동체의 대응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디어 시대에 ‘악’의 문화는 어떻게 자리잡게 되는가?: 비도덕적인 도덕판단의 시대에 대한 고찰

  • ‘사회악’의 여성화 과정: 2000년대 이후 아동학대를 중심으로
    -절멸의 효율성에 대한 발견: 1950년대 반공주의 포스터의 미학
    -일제 식민지 시기 조선인 ‘악행’의 해석과 ‘조선적 악’의 형성
    -조선 전기 불효(不孝) 개념의 확대와 패악(悖惡)의 형상화 과정

■3차년: 악의 문화로부터 인간성의 존엄과 문명의 진보를 지키기 위한 관점과 방안을 모색하고 제안할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디지털 시대의 이념적/윤리적/문화적 근친성과 이야기의 힘: 타자와 혐오에 대한 예술적 경험을 중심으로
-사이비 도덕판단에 대한 대응: 응보적 시각에서 형성적 규제의 시각으로
-악을 물리치고 위안을 얻기: 인공지능과 신기술의 도전에 대한 종교적 대응
-조선 시대 회화에 나타난 ‘선의 승리’에 대한 믿음
-범죄의 정신의학화와 ‘광기’의 재해석
-유가적 사유와 젠더・소수자・괴물의 화해: ‘각별’(各別)의 관계 맺음과 조화를 위한 탐색

키워드:

악, 디지털 문명, 문화, 윤리적 주체, 인공지능, 딥 언더스탠딩, 포스트휴머니즘, 사회적 배제, 자경주의, 공포, 도덕적 판단, 사회악, 불효, 이야기, 회화, 유교, 민간 신앙, 디지털 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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